경찰 7천 명이 무너뜨린 33일, 자유 벤들란트 공화국
1980년 점거촌의 라디오 방송과 공동체 생활을 상상해 재구성한 대표 삽화입니다. 당시 촬영한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1980년 6월 4일 새벽, 경찰과 연방국경수비대 약 7천 명이 자유 벤들란트 공화국을 포위했습니다. 숲속 시추예정지에 세운 이 공화국은 건국 33일 만에 철거됐습니다. 대체 이 작은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경찰 7천 명이 철거한 것은 독립국이 아니라 시추지를 점거한 마을이었다 1980년 5월 3일, 반핵활동가와 주민들은 고어레벤 인근 심층시추 예정지 1004를 점거하고 자유 벤들란트 공화국 을 선포했습니다. 6월 4일에는 경찰과 연방국경수비대가 점거자들을 이동시키고 건물을 철거했습니다. 제목의 약 7천 명은 NDR의 회고 자료가 제시한 투입 규모이며, 33일은 5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의 점거 기간입니다. 충돌의 핵심은 시추조사 부지를 누가 사용할 것인가였습니다. 정부는 소금돔의 처분장 적합성을 조사하려 했고, 점거자들은 그곳에 집을 짓고 생활하면서 조사를 막으려 했습니다. 국가의 여권과 국경을 흉내 낸 형식은 이 저항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당국의 강경한 정치적 비판도 있었으므로, 이름과 상징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화국이라는 상징, 실제 공동체 운영, 이후 핵폐기물 정책의 변화 를 나누어 살펴봅니다. 이를 구분하면 왜 여권보다 공동주방과 회의가 중요했는지, 그리고 33일 만의 철거를 곧바로 운동 전체의 실패나 40년 뒤 승리로 판단하면 안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작은 고어레벤의 소금돔이었다 고어레벤(Gorleben)은 당시 서독과 동독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니더작센주의 농촌지역이었습니다. 이 조용한 지역이 전국적인 핵정책 논쟁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간 것은 1970년대 후반입니다. 지하 깊숙한 곳에 거대한 암염층, 흔히 소금돔 이라고 부르는 지질구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사성폐기물을 아주 오랫동안 인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