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에서 시작되어 비영토 공동체가 된, 애틀랜티움 제국
애틀랜티움의 국기와 호주 농촌 풍경을 함께 표현한 대표 이미지. 제국의 상징을 소개하는 용도이며, 국가 승인이나 영토 독립을 입증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애틀랜티움 제국은 1981년 시드니의 차고 뒤 검은 점선에서 시작됐습니다. 열네 살 소년이 황제가 된 이 제국은 훗날 국경이 덜 중요한 세계를 주장하는 비영토 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애틀랜티움 제국은 차고 뒤 점선에서 어떻게 비영토 공동체가 됐나
애틀랜티움 제국(Empire of Atlantium)의 시작은 대단한 궁전도, 무인도도 아니었습니다. 1981년 11월 27일, 시드니에서 조지 크루익섕크(George Cruickshank)와 제프리 더건, 클레어 더건 세 사람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크루익섕크는 열다섯 번째 생일을 열흘 앞둔 청소년이었고, 스스로를 조지 2세 황제(Emperor George II)라고 불렀습니다. 최초의 ‘영토’는 크루익섕크 어머니 집 차고 뒤에 있던 약 10㎡짜리 콘크리트 바닥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닥 한쪽에 검은 점선을 칠했고, 그 선 안쪽을 애틀랜티움이라고 정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점선으로 표시한 땅, 온라인으로 가입한 ‘시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가 지위를 따로 구분합니다. 그래야 수도와 황제가 있다는 소개를 실제 독립이나 이민 자격으로 오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고 뒤의 경계가 인터넷 공동체로 바뀐 과정을 따라가며, 영토가 중심이 아니라는 제국에 왜 수도가 필요한지도 살펴봅니다.
어린 시절 뒷마당에 나라를 만든 이야기라면 여기까지는 꽤 익숙합니다. 정말 묘한 건 그다음입니다. 크루익섕크는 이 설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창립 멤버들이 성장하고 각자의 생활로 흩어지면서 활동이 한동안 약해지기는 했지만, 애틀랜티움이라는 이름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는 어린 시절 시작한 일을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했다는 데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장난처럼 출발한 국경선 하나가 수십 년짜리 프로젝트가 된 셈입니다.
제국을 만들었는데 목표는 국경이 약해지는 세계였다
애틀랜티움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독립 선언 그 자체보다 그 뒤에 붙은 생각입니다. 크루익섕크는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가 이동의 자유와 삶의 기회를 지나치게 좌우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애틀랜티움은 특정 민족이나 지역 주민을 떼어내 별도의 영토국가를 만들겠다는 분리독립 운동이 아니라, 국경과 출생국가에 덜 묶인 세계적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공식 FAQ에서도 자신들을 ‘주로 비영토적인 주권 공동체’이자 미래의 세계국가를 향한 실험처럼 묘사합니다.
여기서 꽤 재미있는 역설이 생깁니다. 보통 미크로네이션은 “이 땅은 이제 우리나라다”라는 주장에 힘을 줍니다. 애틀랜티움은 정반대 방향을 바라봅니다. 국적 때문에 이동과 기회가 달라지지 않고 누구나 자신이 속할 공동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애틀랜티움 같은 별도의 ‘세계국가’를 내세울 이유도 점점 줄어듭니다. 성공할수록 자기 자신이 필요 없어지는 제국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철학이 실제 주권국가의 법적 지위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애틀랜티움 시민권은 호주나 다른 나라의 국적을 대신하지 않고, 제국의 정부 조직도 호주 정부의 행정권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애틀랜티움은 국가처럼 보이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그 제도와 국제법상 인정되는 국가기관은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이 선을 놓치면 애틀랜티움이 던진 질문보다 ‘진짜 나라냐 아니냐’라는 말싸움만 남게 됩니다.
사라질 뻔한 나라는 인터넷에서 다시 커졌다
초기 애틀랜티움은 창립 멤버들이 성장하면서 한동안 힘이 빠졌습니다. 공식 기록에서도 1990년에는 제국 의회 선거가 제때 열리지 않아 권한이 다시 황제에게 돌아갔다고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 친구 몇 명이 시작한 공동체가 그대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었습니다. 전환점은 1990년대 말과 인터넷이었습니다. 애틀랜티움은 웹을 통해 시드니 바깥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같은 땅에 사는 주민보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참여자가 더 중요한 공동체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이 변화는 애틀랜티움의 비영토적 세계관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실제로 2015년 ABC 취재 당시 애틀랜티움 측은 약 100개국에 3,000명가량의 시민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더 재미있는 대목은 그 가운데 대부분이 호주에 있는 애틀랜티움의 활동 거점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시민이 되기 위해 같은 마을에서 살 필요도, 국경선을 직접 밟아볼 필요도 없었던 겁니다.
온라인 시민은 거주민이나 이민자와 같은 뜻이 아니었습니다. 공식 FAQ는 시민권이 기존 국적을 대체하지 않으며, 참여자가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정치 과정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새 나라로 이주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국적을 유지한 사람들이 하나의 의제에 동의하는 구조입니다. 인터넷은 비영토 공동체라는 발상을 실제 회원망으로 옮기는 장치가 됐습니다.
다만 이 3,000명은 2015년 당시 애틀랜티움 측이 제시한 수치이지, 2026년 현재의 인구 통계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공식 FAQ에는 그보다 이른 시기의 1,200명 이상이라는 숫자도 남아 있습니다. 시점에 따라 자체 집계가 달라지는 만큼 최신 시민 수를 단정하기보다, 인터넷이 애틀랜티움을 지역적 놀이에서 국제적 참여형 프로젝트로 바꿨다는 흐름을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애틀랜티움 관련 YouTube 영상. 영상에 등장하는 모습과 발언은 촬영 당시의 기록으로 보며, 현재 운영 상태와 구분해 읽습니다.
비영토 제국은 호주 시골에 수도를 만들었다
영토가 국가의 핵심이 아니라고 말하던 애틀랜티움에도 실제 활동 거점은 생겼습니다. 2008년 크루익섕크는 뉴사우스웨일스주 농촌 지역의 약 0.76㎢ 규모 사유지를 애틀랜티움의 ‘오로라 주(Province of Aurora)’라고 불렀고, 그 안에 세계 수도 ‘콩코르디아(Concordia)’를 두었습니다. 이름이 자주 뒤섞이지만 오로라가 주이고, 콩코르디아가 그 안의 수도입니다. 이 구분 하나만 제대로 잡아도 자료를 읽을 때 훨씬 덜 헷갈립니다.
수도의 이동만 봐도 제국이 커진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1981년 약 10㎡ 콘크리트 바닥이 첫 임시 수도였고, 1999년에는 시드니의 약 61㎡ 아파트 ‘임페리움 프로퍼(Imperium Proper)’가 두 번째 거점이 됐습니다. 2008년에는 오로라 안의 콩코르디아로 수도 기능이 옮겨갔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독립국의 영토 확장보다 프로젝트 활동 무대의 이동에 가까웠습니다.
콩코르디아에는 우체국과 정부 관련 시설, 기념물 등이 마련됐습니다. 2015년 ABC 취재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약 4m 높이의 피라미드였습니다. 애틀랜티움 측은 그 안에 헌법을 보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변 풍경은 전형적인 호주 농촌과 목초지인데 한가운데 ‘제국의 수도’, 우체국, 피라미드가 등장합니다. 사진을 보면 세계국가의 수도라기보다 현실과 설정이 이상하게 겹쳐진 무대처럼 보입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비영토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현실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의식을 치르고 상징을 세울 장소는 필요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오로라가 호주에서 법적으로 떨어져 나온 영토가 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 법적 지위는 뉴사우스웨일스주 안의 사유지입니다. 애틀랜티움이 이를 주와 수도라고 부르는 행위와 호주의 주권·토지법이 바뀌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황제도 호주에 세금을 냈다
이 대목에서 애틀랜티움은 호주의 일부 유명 미크로네이션과 꽤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독립이나 주권을 선언했다는 이유로 호주법에서 빠져나가거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크루익섕크는 미크로네이션이라는 형식을 세금 회피나 법적 의무를 벗어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생각과 거리를 뒀습니다. ‘황제’라는 칭호는 썼지만, 호주 세무당국 앞에서 초법적인 황제가 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2020년 ABC가 호주 미크로네이션들을 다룬 기사에서도 그는 주권 선언 자체가 법적인 특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호주 헌법학자 조지 윌리엄스 역시 개인이나 집단이 독립을 선언했다고 해서 호주법과 납세 의무에서 일방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선언은 선언이고, 법적 관할은 별개의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차이는 애틀랜티움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합니다. 애틀랜티움의 ‘주권’은 호주 정부를 몰아내고 실제 통치권을 행사하겠다는 계획이라기보다 하나의 정치적·철학적 주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제국이라는 외형은 거창한데 현실의 토지세와 법적 의무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 묘한 장면이 생깁니다. 개인적으로는 피라미드보다 이 부분이 애틀랜티움의 성격을 더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돈도 우표도 있었지만, 진짜 국가는 아니었다
애틀랜티움은 국가의 외형도 제법 꼼꼼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체 화폐인 임페리얼 솔리두스(Imperial Solidus)를 만들고 우표를 발행했으며, 국기와 국가, 헌법, 사법체계와 정부 직책도 구성했습니다. 해외 참여자 가운데 일부에게 외교적 성격의 직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차고 뒤 검은 점선에서 시작한 나라치고는 설정이 놀랄 만큼 촘촘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징의 존재와 실제 법적 효력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임페리얼 솔리두스는 호주 달러처럼 법적으로 강제 통용되는 법정통화가 아니고, 애틀랜티움의 시민권도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적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자체 우표를 만들었다고 해서 호주 우편제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제국이 임명한 외교 직책 역시 상대 국가가 승인한 정식 외교관 신분과는 다릅니다.
흥미롭게도 애틀랜티움 공식 FAQ는 여권을 아예 발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이유도 애틀랜티움답습니다. 자유로운 국제 이동을 주장하는 공동체가 이동을 제한하는 여권과 비자를 자체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국가의 상징은 열심히 갖췄는데 ‘미크로네이션이라면 당연히 만들 법한 여권’은 철학 때문에 거부한 셈이죠. 이 선택은 애틀랜티움이 단순히 실제 국가를 흉내 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꽤 잘 보여줍니다.
황제는 자신의 제국을 퍼포먼스 아트라고 불렀다
크루익섕크는 애틀랜티움을 일종의 ‘지속적인 퍼포먼스 아트 프로젝트’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만 떼어놓으면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그의 설명은 그보다 미묘했습니다. 국경 없는 이동, 출생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기회, 세계적 공동체라는 메시지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황제와 제국, 화폐와 수도라는 과장된 형식을 유머와 함께 사용한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애틀랜티움에는 진지함과 농담이 계속 붙어 다닙니다. 공식 칭호는 길고 거창하지만 크루익섕크는 평소 그냥 ‘조지’라고 부르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고, 제국의 수도에는 피라미드까지 세웠지만 호주법과 세금은 현실의 규칙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왕국 놀이인데, 안쪽에서는 국적과 국경이라는 꽤 무거운 주제를 건드립니다. 이 조합 때문에 애틀랜티움은 1980년대의 청소년 놀이로만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자료 비교·검증: 시민 수와 수도 이름을 따로 읽기
기존 글에 사용한 공식 FAQ와 언론 보도는 자료의 성격과 시점이 다릅니다. 공식 설명은 공동체가 스스로 내세우는 정체성을 보여주고, 인터뷰 기사는 그 시점의 발언과 현장을 기록합니다. 두 종류 모두 국제적인 국가 승인을 증명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 확인 항목 | 자료의 설명 | 읽을 때의 기준 |
|---|---|---|
| 시민 수 | 공식 FAQ의 1,200명 이상과 2015년 ABC의 약 3,000명 | 서로 다른 시점의 회원 집계이며 현재 거주 인구가 아님 |
| 수도 이름 | 2015년 ABC는 오로라를 수도로 소개 | 애틀랜티움의 구분에서는 오로라가 주, 콩코르디아가 그 안의 수도 |
| 헌법과 피라미드 | 2015년 보도는 헌법 보관 계획을 설명 | 당시 계획을 현재 완료된 사실로 바꾸지 않음 |
현재 상태: 2026년 10월 5일 확인 범위
이번 수정에서는 2015년 ABC 원문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공식 FAQ와 황제 소개 페이지는 이번 조회에서 정상적으로 읽히지 않아 최신 내용으로 재검증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기존 공식 설명은 과거 자료의 설명으로 다루며, 2026년 시민 수·신규 가입 접수·방문 및 숙박 운영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남깁니다. 자료를 읽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가 해산했다고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마무리: 경계를 만든 제국이 경계의 필요를 묻다
이번 대조에서 먼저 확인한 것은 시민 수에 붙은 연도와 ABC가 사용하는 수도 이름이었습니다. 같은 ‘시민’과 ‘수도’라는 말도 회원망을 설명할 때와 실제 국가를 설명할 때 뜻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숫자의 크기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세었는지를 본문에 남겼습니다.
제가 애틀랜티움에서 주목하는 것은 국가 상징을 갖춘 정도보다 그 상징의 사용 방식입니다. 땅에 선을 그어 공동체를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출생국가에 따라 이동과 기회가 달라지는 현실을 질문했습니다. 수도는 참여자가 만나는 무대이고 시민권은 동의의 표시라는 관점으로 읽으면, ‘진짜 나라냐’라는 질문을 넘어 이 제국이 어떤 생각을 전하려 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법적 독립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 형식을 사용한 정치적 표현에 대한 해석입니다.
애틀랜티움 제국 Q&A
Q. 지금 콩코르디아를 방문할 수 있나요?
과거에는 사전 예약 방문과 숙박 관련 안내가 있었지만, 2026년 현재 공개 자료만으로 운영 여부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일반 관광지처럼 바로 찾아가기보다 애틀랜티움 측의 최신 안내와 사유지 출입 허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Q. 시민이 되면 호주로 이주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애틀랜티움 시민권은 공동체의 상징적 지위이며 호주 비자나 영주권, 국적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가입과 실제 이민 절차는 법적으로 전혀 별개입니다.
Q. 임페리얼 솔리두스는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나요?
호주의 법정통화가 아니므로 일반 상점에 결제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애틀랜티움의 화폐는 제국 내부의 상징이나 수집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Q. 조지 2세는 건국 당시 몇 살이었나요?
1981년 11월 27일은 그의 열다섯 번째 생일을 열흘 앞둔 날이어서 당시 나이는 열네 살이었습니다. 흔히 ‘열다섯 살 소년’으로 소개되지만 정확히는 만 14세에 애틀랜티움을 시작했습니다.
참고 자료
- Empire of Atlantium - Frequently Asked Questions
- Empire of Atlantium - The Emperor
- ABC News - Empire of Atlantium
- ABC News - Australia's micronations
- ABC News - Micro-nations of Austra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