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입국하다 체포된, 리버랜드 자유공화국
2015년 리버랜드 자유공화국(Free Republic of Liberland)을 세운 비트 예들리치카는 불과 한 달 뒤 자기 나라에 들어가려다 크로아티아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대통령이 국경에서 막힌 셈인데, 이유를 따라가면 다뉴브강의 오래된 국경 문제가 나옵니다.
대통령이 자기 나라 국경에서 붙잡혔다
2015년 4월 13일, 체코 정치인이자 자유주의 활동가였던 비트 예들리치카(Vít Jedlička)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 다뉴브강 서쪽의 고르냐 시가(Gornja Siga)를 새로운 국가의 영토라고 선언했습니다. 국호는 리버랜드 자유공화국. 면적 약 7㎢는 리버랜드 측이 제시하는 주장 면적입니다. 깃발을 세우고 대통령을 자처했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수많은 미크로네이션에서 볼 수 있는 독립 선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장면은 그다음 달에 벌어졌습니다.
예들리치카는 자신이 리버랜드 영토라고 선포한 고르냐 시가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막은 쪽은 리버랜드 국경 수비대가 아니라 크로아티아 경찰이었습니다. 그는 2015년 5월 현장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제지된 뒤 연행됐고, 국경을 넘은 문제를 둘러싸고 법적 절차까지 밟았습니다. 이후 배를 타고 다시 접근하려는 과정에서도 예들리치카와 지지자들이 크로아티아 당국에 붙잡혔습니다.
이 글은 체포 사건을 통해 독립 선언, 영토에 대한 실제 통제, 다른 국가의 승인을 따로 판단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국경 분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제3자의 선점권을 뜻하는지, 사무소·시민권·온라인 정부가 생기면 국가 지위까지 달라지는지 같은 질문을 이 세 기준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버랜드 측의 설명과 주변 정부의 설명을 나란히 읽는 이유입니다.
이 장면은 처음 접하면 꽤 황당합니다. 자기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세웠다는 나라에 들어가려다 다른 나라 경찰에게 붙잡혔으니까요. 리버랜드의 논리대로라면 크로아티아 경찰이 간섭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반대로 크로아티아 입장에서는 예들리치카가 지도 위에 선 하나 긋고 독립을 선언했다고 해서 기존의 국경 관리 권한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리버랜드가 지금까지 벌여온 논쟁은 사실 이 충돌에서 거의 전부 시작됩니다.
더 재미있는 건 예들리치카가 아무 섬이나 발견하고 “여기 내 나라”라고 선언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다뉴브강 국경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생긴 아주 특이한 지리적 빈틈을 노렸습니다. 자기 판단으로는 두 나라 모두 이 땅을 영토로 삼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리버랜드를 이해하려면 대통령이나 헌법보다 먼저, 강 하나를 놓고 왜 국경선이 두 개처럼 생겼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움직이는 다뉴브강이었다
리버랜드가 주장하는 땅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를 흐르는 다뉴브강 주변에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한때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했던 지역이지만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고 새로운 국경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다뉴브강 구간의 경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문제가 됐습니다. 지도만 보면 강을 따라 선 하나 그으면 끝날 것 같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는 대체로 현재 다뉴브강의 흐름, 즉 강의 중앙선을 중심으로 국경을 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크로아티아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부터 이어진 토지대장상의 지적 경계를 중요한 기준으로 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강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굽이치기도 하고, 홍수와 하천 정비로 물길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과거 토지대장에 그어진 경계와 오늘날 실제 다뉴브강의 흐름이 서로 어긋난 것입니다.
그 결과 지도에는 묘한 지역들이 나타났습니다. 현재 강줄기를 기준으로 보면 크로아티아 쪽에 있지만 과거 지적 경계상 세르비아 쪽과 연결되는 땅이 있고, 반대로 세르비아 쪽 강변에 있으면서 크로아티아가 역사적 경계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구역도 있습니다. 크로아티아가 역사적 지적선을 전부 포기하고 현재 강 중앙선을 받아들이면 손해를 볼 수 있고, 세르비아가 옛 지적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국이 현재 관리하는 쪽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국경선 하나에 토지대장과 현재 지형이 동시에 얽힌 셈입니다.
고르냐 시가는 바로 이 복잡한 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뉴브강 서쪽에 있으므로 현재 강의 중앙선을 기준으로 보면 크로아티아 쪽에 놓입니다. 그런데 크로아티아가 강조하는 과거 지적 경계를 적용하면 크로아티아가 다른 구역에서 주장하는 논리와 묘한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이 생깁니다. 예들리치카는 바로 그 틈을 봤습니다. 국경 분쟁은 보통 어느 나라가 어느 땅을 더 가지려고 다투는 이야기인데, 그는 거꾸로 “두 나라 모두 이곳을 자기 땅으로 보지 않는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도 위의 빈틈을 ‘주인 없는 땅’이라고 읽었다
예들리치카의 핵심 주장은 국제법에서 쓰이는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즉 어느 국가의 주권에도 속하지 않은 땅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는 세르비아가 현재 다뉴브강 중앙선을 국경으로 본다면 강 서쪽의 고르냐 시가는 세르비아 영토가 아니고, 크로아티아 역시 과거 지적 경계를 근거로 다른 지역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고르냐 시가를 자국 영토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기 어렵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두 나라 사이에 남겨진 무주지이며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렇게 2015년 4월 13일 리버랜드 자유공화국이 등장했습니다. 독립 선언문만 올리고 끝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들리치카와 지지자들은 국기와 국가 모토를 정하고 정부 조직과 헌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라 이름에 들어간 ‘Liber’ 역시 자유를 강조하는 프로젝트의 성격과 연결됩니다. 이들의 관점에서는 기존 국가가 주장하지 않는 땅을 평화적으로 선점한 뒤 새로운 국가 체제를 구축하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결정적인 점프가 하나 있습니다. “세르비아 영토가 아니다”라는 말과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땅이다”라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국경 획정이 끝나지 않아 어느 쪽의 최종 영토가 될지 다투고 있는 지역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집 두 채 사이의 담장 위치가 법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이 땅을 지나가던 제3자가 자기 소유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리버랜드의 국가 건설 논리는 바로 이 차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정부의 답은 분명했습니다. 고르냐 시가는 제3자가 차지할 수 있는 주인 없는 땅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최종적으로 국경을 획정해야 할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들리치카는 지도에서 국경의 ‘빈틈’을 발견했다고 봤지만, 크로아티아는 애초에 그런 빈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셈입니다. 공식 입장을 읽을 때 핵심은 최종 국경선에 대한 협상과 제3자의 선점 가능성을 분리한다는 점입니다. 리버랜드 이야기가 단순한 괴짜 국가 만들기에서 끝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크로아티아는 “빈 땅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리버랜드 쪽 설명만 읽으면 고르냐 시가가 정말 지도에서 버려진 조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세르비아는 이 지역을 자국 영토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고, 크로아티아가 제시해온 역사적 지적 경계와 현재 강줄기도 정확히 겹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럼 둘 다 안 가진다는 뜻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합니다. 하지만 실제 국경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크로아티아 외교 당국은 리버랜드가 등장한 뒤 이 지역의 법적 지위를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고르냐 시가를 포함한 문제 지역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국경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귀속을 정해야 할 대상이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아 제3자가 선점할 수 있는 terra nullius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크로아티아는 또 다뉴브강 우안 일부 지역에서 경찰과 행정기관이 실제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세르비아 쪽 입장도 오해하기 쉽습니다. 세르비아가 고르냐 시가를 자기 영토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리버랜드의 독립을 인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땅이 아니다”와 “당신의 나라다”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습니다. 국가 승인은 상대의 주권과 국제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별도의 정치·외교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리버랜드는 이 간격을 자신들의 국가 성립 논리로 해석하지만, 주변 국가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들리치카가 자기 나라에 들어가려다 크로아티아 경찰에게 붙잡힌 장면도 설명됩니다. 리버랜드가 지도와 법리를 근거로 새로운 주권 국가가 생겼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현실의 행정권과 국경 관리 권한은 기존 국가기관이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독립 선언문 한 장과 실제 통치권 사이의 거리가 눈앞에서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체코 정부도 대통령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예들리치카가 체코인이라는 점 때문에 리버랜드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체코 정부가 어느 정도 뒤에서 지원했거나 최소한 정치적으로 보호해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 반응은 정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체코 외무부는 2015년 예들리치카가 크로아티아에서 체포된 뒤 그의 활동이 체코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습니다.
체코 측은 예들리치카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를 방문한다면 해당 국가의 법률을 따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리버랜드는 기존 국가가 비밀리에 밀어준 분리 독립 프로젝트가 아니라 예들리치카와 지지자들이 자체적으로 추진한 국가 건설 실험에 가까웠습니다. 이름도 정부도 대통령도 만들었지만, 정작 예들리치카가 원래 국적을 가진 체코 정부조차 그의 주권 주장을 공식적으로 떠받쳐주지 않은 셈입니다.
이 대목은 짧지만 꽤 중요합니다. 미크로네이션의 설립자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와 그 나라 정부가 프로젝트를 인정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리버랜드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려면 이런 구분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건 ‘세금을 강제로 걷지 않는 나라’였다
리버랜드가 단순히 국경의 빈틈을 노린 장난으로 끝났다면 10년 넘게 계속 화제가 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예들리치카와 지지자들은 독립 선언 뒤 실제 국가처럼 보이는 제도들을 하나씩 만들었습니다. 국가 모토는 “To Live and Let Live”. 우리말로 옮기면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하라’ 정도의 의미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최소한의 정부를 강조하는 리버랜드의 철학이 이 짧은 문장에 거의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조세에 대한 생각입니다. 리버랜드는 강제적인 세금 부과를 최소화하고 자발적 기여를 중심으로 국가 재정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내세웠습니다. 전통적인 국가가 세금을 의무적으로 걷고 그 돈으로 행정과 복지를 운영하는 방식과 상당히 다른 모델입니다. 이 때문에 자유지상주의 성향의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고, 리버랜드가 인터넷에서 빠르게 알려지는 데도 이런 정치철학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헌법과 정부 조직도 갖췄습니다. 대통령, 내각, 의회 구조를 만들고 선거와 시민권 제도를 운영했으며, 최근에는 블록체인을 행정과 투표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자체 경제 체계에서는 Liberland Dollar, LLD도 사용합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상상 국가보다는 훨씬 진지한 프로젝트라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구분은 필요합니다. 리버랜드가 자체적으로 만든 화폐와 행정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주권 국가의 제도와 같은 법적 효력을 가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LLD가 있다고 해서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에서 법정 통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리버랜드 시민권을 받았다고 해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새로운 국적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의 모양을 만드는 일과 다른 국가들이 그 모양을 국가로 인정하는 일은 서로 다릅니다.
신청자는 수십만 명, 실제 시민 수는 왜 다를까?
리버랜드가 독립을 선언한 뒤 가장 화제가 된 숫자 중 하나는 시민권 신청자 수였습니다. 정부 간섭을 줄이고 자유를 넓힌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타고 퍼지자 세계 각지에서 신청자가 몰렸습니다. 리버랜드 공식 채널에서는 수십만 명이 시민권에 관심을 보이거나 신청했다는 수치를 꾸준히 공개해왔습니다.
신청 규모는 자료의 날짜와 집계 항목을 함께 봐야 합니다. 이번 검수에서는 기존 원문의 70만·80만이라는 수치를 동일 시점의 최신 공식 통계로 대조하지 못했으므로 2026년 현재값으로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관심 등록, 신청, 시민 자격 취득, 현지 거주는 서로 다른 항목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신청자와 시민을 같은 숫자로 세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리버랜드에 시민권 신청서를 냈거나 관심 등록을 했다고 해서 모두 정식 시민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등록 시민은 공개된 신청 규모보다 훨씬 적습니다. 숫자가 커 보이다 보니 “수십만 명이 사는 나라”로 오해하기 쉬운데,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리버랜드는 E-Residency라는 전자 거주 제도도 운영합니다. 온라인 기반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고 리버랜드 생태계에 참여하기 위한 성격이 강합니다. 이름만 보면 에스토니아식 전자 거주나 실제 이민 자격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것 역시 크로아티아·세르비아나 유럽연합에서 체류할 수 있는 법적 거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는 아닙니다. 이 부분은 이름 때문에 헷갈리기 딱 좋습니다.
2023년, ‘들어갈 수 없는 나라’에 사람들이 머물기 시작했다
리버랜드의 이야기가 2015년 체포 사건에서 그대로 멈췄다면 지금쯤 과거의 인터넷 화제 정도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리버랜드 측 기록에 따르면 2023년 8월부터 고르냐 시가에서 지속적인 현장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지지자들이 실제로 현지에 머물고 간단한 시설을 만들며 정착지 형태를 갖추려는 시도가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2015년 리버랜드 대통령이 들어가려다 경찰에 붙잡혔던 곳에 몇 년 뒤 사람들이 실제로 머물기 시작했다는 것은 꽤 큰 변화입니다. 리버랜드는 현장에 사람이 머문다는 사실을 국가 성립 주장을 강화하는 중요한 변화로 바라봅니다. 일반적인 미크로네이션 가운데는 인터넷 사이트와 상징물만 존재하고 실제 영토에 정착한 사람이 거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리버랜드가 물리적인 현장 활동을 계속한다는 점은 분명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 것은 아닙니다. 리버랜드 자체 자료에도 크로아티아 국경 경찰과의 마찰이나 현장 접근 제한 문제가 계속 언급됩니다. 방문과 물자 이동이 가능해진 시기가 있었다고 해서 리버랜드가 고르냐 시가를 일반적인 주권 국가처럼 자유롭게 통제하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변 국가의 국경 관리와 행정권 문제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꽤 묘합니다. 2015년에는 “대통령도 못 들어가는 나라”가 리버랜드를 상징했다면, 2023년 이후에는 “사람이 실제로 머물기는 하는데 국가 지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곳”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습니다. 독립 선언은 하루에 할 수 있지만 정착과 행정, 국경 통제까지 갖추는 과정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 진짜 국가가 되는 걸까?
리버랜드가 실제 국가인지 따질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몬테비데오 기준(Montevideo Criteria)입니다. 보통 국가가 성립하기 위한 요소로 일정한 영토, 영구적인 주민, 정부,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맺을 능력이 거론됩니다. 리버랜드는 헌법과 정부, 시민 제도, 대외 조직을 갖추고 있고 2023년 이후에는 현장에 사람이 머무른다고 주장하니 겉으로 보면 이 조건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 보입니다.
2016년 시카고 국제법 저널에 실린 분석은 리버랜드의 국가 성립 주장을 검토한 뒤 엄격한 기준에서는 인정받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에는 영구적 주민과 실효적인 정부 통제가 특히 약한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2016년에 작성된 분석입니다. 2023년 이후 현장 정착 시도와 최근 행정 활동까지 평가한 자료는 아니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국가가 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여전히 가장 큰 문제는 영토의 법적 지위와 실효적 통제입니다. 고르냐 시가의 최종 귀속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미해결 국경 문제와 연결돼 있고, 두 나라가 리버랜드의 주권 주장을 인정한 것도 아닙니다. 리버랜드가 정부와 시민을 만들었다고 해도 주변 국가와 무관하게 국경을 관리하고 법을 집행하는 전형적인 주권 국가 수준의 통치권을 행사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리버랜드를 설명할 때는 두 극단을 모두 피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인터넷 장난이라고 해버리면 실제로 이어진 조직과 현장 활동을 놓치게 됩니다. 반대로 이미 완성된 독립 국가라고 부르면 영토 분쟁과 국제적인 승인 문제를 건너뛰게 됩니다. 현재 모습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실제 영토를 주장하며 국가의 요소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현역 미크로네이션 프로젝트 정도입니다.
현재 상태 — 2026년 10월 5일 확인
독립 선언 후 11년이 지난 2026년에도 리버랜드 활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식 채널에서는 비트 예들리치카가 여전히 대통령이자 설립자로 활동하고 있고, 정부 조직과 선거, 시민권 제도, 기업 등록, 블록체인 행정 프로젝트도 계속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때 인터넷에서 잠깐 유행한 선언이 아니라 꽤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된 셈입니다.
리버랜드 공식 포럼은 2026년 8월 11일 베오그라드 대표 사무소 개소 소식을 게시했습니다. 리버랜드는 이곳을 세르비아와의 교류와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거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름 때문에 헷갈리면 안 됩니다. 이 대표 사무소가 생겼다는 사실은 세르비아 정부가 리버랜드를 외교적으로 승인했다거나 공식 대사관 지위를 부여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르비아 아파틴 인근에는 The ARK라는 리버랜드 관련 거점도 운영됩니다. 행사와 숙박, 커뮤니티 활동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소개되며 리버랜드 지지자들이 실제로 모이는 장소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서도 위치를 구분해야 합니다. The ARK는 리버랜드가 영토라고 주장하는 고르냐 시가 자체가 아니라 세르비아 쪽에 있는 거점입니다. 아파틴의 활동 공간과 고르냐 시가의 영유권 주장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지금 리버랜드의 가장 독특한 모습입니다. 국제적인 주권 승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는데, 조직은 선거를 하고 행정 시스템을 만들고 실제 거점까지 늘려가고 있습니다. 국가가 먼저 인정되고 제도가 따라오는 일반적인 순서와 거의 반대입니다. 제도를 계속 쌓아 올리면 언젠가 국가성이 따라올 것이라는 실험에 더 가깝습니다.
자료 비교 — 같은 국경을 다르게 설명하는 이유
| 자료와 시점 | 확인할 수 있는 내용 | 확정할 수 없는 내용 |
|---|---|---|
| 크로아티아 외교부, 2015년 6월 설명 | 국경 획정 대상이며 제3자가 점유할 무주지가 아니라는 정부 입장 | 2026년의 모든 현장 통제 상황 |
| Gabriel Rossman, 2016년 법률 논평 | 무주지 가능성과 국가 성립·승인 경로에 대한 분석 | 최종 판결이나 2023년 이후 정착 평가 |
| 리버랜드 FAQ | 자체 시민·전자 거주·블록체인 제도 설명 | 주변 국가의 승인이나 그 국가들의 체류허가 |
| 리버랜드 공식 포럼, 2026년 8월 11일 | 베오그라드 사무소 개소 공지 | 세르비아의 외교 승인·공식 대사관 지위 |
2016년 논평은 무주지 가능성에 대한 논증도 검토합니다. 크로아티아 정부의 부정과 학술적 가능성 검토는 자료의 성격부터 다릅니다. 어느 한쪽 문장을 최종 국제법 판결처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번 검수에서 두 나라의 최종 국경 합의나 리버랜드 승인 여부를 새롭게 확정하는 문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국가는 선언할 수 있었지만 국경은 선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크로아티아 외교부의 2015년 설명, Rossman의 2016년 논평, 리버랜드의 FAQ와 2026년 사무소 공지를 대조했습니다. 정부 자료는 국경 관리의 입장을, 논평은 국가 성립의 논증을, 자체 공지는 조직 활동을 보여줍니다. 제가 중요하게 본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증거를 합쳐 ‘이미 국가가 됐다’는 결론을 만들지 않는 일입니다. 조직이 지속되는 증거와 주권이 성립했다는 증거를 구별하면 리버랜드의 실험을 과장 없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리버랜드에는 국기와 대통령이 있고 헌법과 정부 조직도 있습니다. 시민권을 신청하는 사람도 있고 선거와 블록체인 행정 시스템도 운영합니다. 고르냐 시가에서의 현장 활동도 리버랜드 측 자료에 등장합니다. 다만 이것으로 현재의 상주 인구나 통제 범위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만 놓고 보면 홈페이지 하나 만들어놓고 나라라고 부르는 프로젝트와 같은 선상에 두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2015년의 장면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남습니다. 예들리치카는 이미 대통령을 자처했고 리버랜드도 독립을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영토라고 부른 곳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현실에서 국경을 통제하던 것은 크로아티아 경찰이었습니다. 리버랜드가 이후 얼마나 많은 제도를 만들었는지와 별개로 이 장면은 주권이 무엇인지 꽤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2023년 이후 현장 활동에 관한 자체 기록과 2026년 사무소 개소 공지는 리버랜드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나라 이름은 하루 만에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국경선까지 그 선언을 따라 움직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리버랜드에 일반 관광객도 방문할 수 있나요?
리버랜드 측은 현재 방문과 현장 활동에 관한 안내를 제공하고 있지만 고르냐 시가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국경 문제와 연결된 지역입니다. 이동 과정에서 크로아티아 당국의 신분 확인이나 통제를 받을 수 있으며 접근 여건도 바뀔 수 있으므로, 일반 관광지처럼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Q. 리버랜드 시민권을 받으면 유럽연합에서 거주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리버랜드 시민권이나 E-Residency는 크로아티아·세르비아 또는 다른 유럽연합 국가가 인정하는 체류허가나 국적과 같은 제도가 아닙니다. 리버랜드 내부 행정과 커뮤니티 참여를 위한 자체 자격과 다른 국가가 발급하는 법적 거주권은 구분해야 합니다.
Q. 리버랜드 여권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나요?
리버랜드가 자체 여권과 여행 문서를 발행한다고 해서 일반 국가의 여권과 같은 국제적 효력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여행에서는 출입국 당국이 인정하는 유효한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므로, 리버랜드 문서를 일반적인 국제 여권의 대체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Q.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가 리버랜드를 인정한 적이 있나요?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범위에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리버랜드를 주권 국가로 공식 승인한 것으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세르비아가 고르냐 시가를 자국 영토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과 리버랜드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며, 크로아티아는 이 지역을 제3자가 차지할 수 있는 무주지라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참고 자료
- Free Republic of Liberland - 공식 홈페이지
- Free Republic of Liberland - FAQ
- Croatian Ministry of Foreign and European Affairs - On Virtual Narratives at Croatia's Borders
- Gabriel Rossman (2016),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But Still So Far): Assessing Liberland’s Claim of Statehood, Chicago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7(1), Article 10
- Czech Ministry of Foreign Affairs - Liberland 관련 공식 입장
- WIRED - Liberland 현장 활동 관련 보도
- Liberland - 2026년 베오그라드 대표 사무소 개소
- Liberland - The ARK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