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이 추방 위기에 만든 나라, 누토피아
흰 손수건을 든 누토피아 발표 장면을 재구성한 이미지. 1973년 기자회견의 실제 사진이 아닙니다.
1973년 미국에서 추방 위기에 놓인 존 레논은 열흘 뒤 국경 없는 누토피아(Nutopia)를 발표했지만, 그를 미국에 남게 한 것은 이 나라가 아니라 법원 판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왜 나라까지 만들었던 걸까요?
추방 명령 열흘 뒤, 존 레논은 나라를 발표했다
1973년 3월 23일, 미국 이민판사는 존 레논의 영주권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영국에서 받은 1968년 대마초 수지 소지 유죄판결이 걸림돌이었습니다. 레논에게는 60일 안에 자진 출국할 기회를 주고, 출국하지 않을 경우 영국으로 추방하도록 했습니다. 그 열흘 뒤인 4월 2일, 레논과 요코 오노는 뉴욕 기자회견에서 국경 없는 누토피아를 내놓았습니다. 미국 체류 자격을 다투던 사람이 모든 시민을 대사로 부르는 나라를 선언하고 외교적 면책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선언문에 적힌 요청과 법원이 인정한 근거를 대조할 때 다르게 읽힙니다. 선언문은 유엔의 인정과 외교적 면책을 요청합니다. 반면 1975년 항소판결이 다룬 것은 영국의 약물 소지 판결이 미국 이민법의 입국 배제 요건에 들어맞는지였습니다. 국경을 없앤다는 예술적 선언과 기존 국경 안에서 체류 자격을 되찾는 소송은 같은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대응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기록을 따라가며 누토피아가 무엇을 요구했고, 실제로 무엇이 레논의 체류 문제를 바꿨는지 구분합니다.
날짜부터 나누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에 실린 선언문에는 1973년 4월 1일이 적혀 있고, 공식 포럼의 기자회견 사진 설명은 4월 2일로 표기합니다. 공식 소개 페이지의 제목과 첫 문장에도 두 날짜가 섞여 있어, 여기서는 문서의 날짜와 공개 기자회견 날짜를 구분했습니다. 요코 오노의 신분도 간단히 요약하기 어렵습니다. 항소판결은 1964년에 영주권을 얻었던 이력을 적고, 1974년 이민항소위원회 기록은 1973년 심리에서 그의 신분을 영주권자로 조정했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심리에서 레논의 신청이 거부되고 오노의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처분 결과를 기준으로 읽었습니다.
땅도 국경도 여권도 없었다
레논과 오노는 선언문의 첫 문장부터 누토피아를 개념국가(conceptual country)라고 불렀습니다.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작은 섬이나 농장, 건물 한 채를 영토라고 주장하는 다른 미크로네이션과 달리 누토피아는 애초부터 차지할 땅을 찾지 않았습니다. 선언문에는 누토피아에는 땅도 없고, 경계도 없고, 여권도 없으며 오직 사람만 존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영토를 확보하지 못해서 국경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의 설정이었습니다.
시민이 되는 방법도 기존 국가의 상식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누토피아의 존재를 자신이 인식하고 있다고 선언하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출생지나 부모의 국적을 따질 필요도 없고, 귀화시험이나 거주기간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허가서를 내주는 절차조차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국경과 여권 때문에 미국 체류 자격을 놓고 싸우던 레논이 바로 그 시기에 이런 시민권 규칙을 만들었다는 점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서 실제 시민권과 누토피아의 시민권을 섞어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누토피아의 시민이 된다고 해서 국제법상 새로운 국적이 생기거나 미국의 이민법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토피아 여권을 발급받아 국경을 통과하는 구조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레논과 오노가 국가의 형식을 빌려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다른 쪽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느 땅에 속하고 어느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지를 국가가 결정하는 구조는 과연 얼마나 당연한 것인가. 누토피아는 그 질문을 꽤 노골적인 방식으로 꺼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누토피아를 일반적인 독립운동이나 미승인 국가와 같은 틀에 넣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정부를 세워 영토를 통치하려는 움직임보다는 개념미술, 정치 풍자, 반문화 운동의 성격을 함께 가진 미크로네이션으로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나라를 세우면서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하나씩 추가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영토와 국경과 여권부터 지워버렸습니다. 국가를 만들었는데 국가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 바로 그 모순이 누토피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모든 시민을 외교관으로 만들어버렸다
누토피아 선언문을 계속 읽어보면 한층 더 묘한 규칙이 나옵니다. 이 나라에는 일반적인 법률이 없고 우주적인 법칙(cosmic laws)만 존재한다고 했으며, 모든 누토피아 시민은 동시에 이 나라의 대사라고 선언했습니다. 대통령과 국민, 외교관을 따로 구분하는 대신 시민 전체에게 외교관이라는 역할을 줘버린 것입니다. 레논과 오노도 자신들을 누토피아의 두 대사라고 소개했습니다.
나라를 만든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서부터는 당시 레논의 현실 문제가 아주 직접적으로 끼어듭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누토피아의 대사라는 이유로 외교적 면책특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선언문에는 누토피아와 그 국민을 유엔이 인정해달라는 요청도 들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추방될 처지였던 사람이 자신을 새로운 나라의 외교관이라고 선언하고 면책까지 요청한 셈이니, 왜 이런 퍼포먼스를 벌였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감이 옵니다.
물론 선언한다고 외교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정부가 레논을 누토피아의 공식 외교관으로 인정했다는 기록도 없고, 유엔이 누토피아를 주권국가로 승인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외교적 면책특권은 개인이 스스로 국가와 직책을 선언한다고 생기는 권리가 아닙니다. 레논의 이민 재판에서도 “누토피아의 대사”라는 설정이 그에게 법적인 보호막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은 누토피아의 설정과 실제 법적 현실을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요구를 단순한 농담으로 치워버리기도 어렵습니다. 레논과 오노는 자신에게 적용되는 국경과 이민제도의 권위를 그대로 부정하기보다, 아예 똑같은 국가 형식을 만들어 되받아쳤습니다. “당신들이 국경과 여권으로 사람의 신분을 정한다면, 우리는 국경도 여권도 없는 나라를 만들고 모두를 외교관으로 선언하겠다”는 식입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었지만 정치적 풍자로 보면 상당히 직설적입니다. 그리고 누토피아가 50년 넘게 기억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장면에 있습니다.
흰 손수건이 국기가 됐다
누토피아를 발표한 1973년 4월 2일, 레논과 오노는 기자들 앞에서 이 나라의 국기도 공개했습니다. 보통 새 나라를 선언한다면 문장이나 별, 독수리 같은 상징부터 떠올리기 마련인데 두 사람이 꺼낸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아무 무늬도 없는 흰 손수건 한 장이었습니다. 별것 없어 보이지만 누토피아라는 프로젝트를 설명하기에는 이보다 더 적절한 물건도 드뭅니다.
흰 깃발은 일반적으로 항복을 뜻합니다. 요코 오노는 훗날 누토피아의 깃발을 설명하면서 그 의미를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평화에 대한 항복과 연결했습니다. 상대를 꺾어 평화를 얻겠다는 발상 대신 싸움 자체를 내려놓는 쪽을 택한 셈입니다. 반전 운동을 벌여온 레논과 오노의 메시지가 아주 단순한 이미지 하나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누토피아의 방식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일반적인 국가는 깃발에 역사와 영토, 왕실, 종교, 혁명 같은 의미를 잔뜩 집어넣습니다. 누토피아는 반대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국경이 없는 나라에 국경을 상징할 그림이 필요 없었고, 특정 집단만을 대표할 문장도 필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비워놓음으로써 뜻을 만든 셈인데, 이 부분은 꽤 영리합니다.
누토피아에는 이른바 Great Seal of Nutopia도 존재했습니다. 국기처럼 국가의 외형을 흉내 내는 상징물을 일부러 갖춰놓으면서도, 정작 국가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영토와 국경은 지웠습니다. 그래서 누토피아의 상징은 장식이라기보다 일종의 개념미술에 가깝습니다. 진지한 국가 형식을 가져와서 국가라는 제도 자체를 장난스럽게 비틀어놓은 것입니다.
국가를 틀었더니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국기만 특이했던 것도 아닙니다. 존 레논이 1973년 발표한 앨범 Mind Games에는 ‘Nutopian International Anthem’이라는 곡이 실려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웅장한 행진곡이나 평화를 노래한 곡을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생하면 노래가 나오지 않습니다. 악기 연주도 없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지는 침묵이 전부입니다.
처음 보면 장난 같지만 흰색 국기와 나란히 놓고 보면 의도가 보입니다. 어느 한 나라의 언어로 가사를 쓰지 않고 특정 민족의 음악도 넣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사람을 하나로 묶는 상징이라면, 누토피아에서는 그 상징조차 누구의 것도 아니게 비워버린 것입니다. 깃발에서는 그림을 지우고 국가에서는 소리를 지웠습니다. 국가를 세운 사람이 국가 상징을 하나씩 없애고 있으니, 이쯤 되면 평범한 건국 프로젝트와는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이런 방식은 레논과 오노가 이전부터 보여온 예술 활동과도 잘 맞습니다. 두 사람은 음악만 만든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와 개념미술, 반전 캠페인을 섞어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습니다. 누토피아 역시 실제 정부청사나 군대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국가의 요소를 하나씩 없애면서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침묵하는 국가까지 듣고 나면 ‘개념국가’라는 표현이 왜 붙었는지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영토는 없는데 뉴욕에는 대사관이 있었다
영토가 하나도 없는 누토피아에는 이상하게도 대사관 주소가 있었습니다. 1973년 선언문에는 뉴욕의 One White Street가 누토피아 대사관 주소로 적혀 있습니다. 국가에는 땅이 없다면서 대사관은 뉴욕에 둔 셈입니다. 설정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이런 모순 자체가 누토피아의 방식이었습니다. 기존 국가의 제도를 흉내 내면서 동시에 그 제도가 얼마나 형식에 의존하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이후에는 레논과 오노가 살던 뉴욕 다코타 아파트에도 ‘NUTOPIAN EMBASSY’라는 금색 명패가 달렸습니다. 요코 오노의 회고에 따르면 레논이 주방 쪽 출입문에 명패를 붙였고 친구들이 그쪽으로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실제 외국 대사관이라면 경비와 외교관, 각종 행정기능이 떠오르지만 누토피아 대사관은 훨씬 소박했습니다. 말 그대로 집의 문 하나가 대사관이 됐습니다.
여기에서도 현실과 설정은 구분해야 합니다. 이 장소는 미국 국무부가 승인한 외국 공관이 아니었고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대사관 명패를 붙였다고 해서 미국 법률의 적용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레논에게는 상징적인 대사관이 있었지만 정작 미국 체류 문제는 여전히 미국 법원과 이민당국 안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 대비가 곧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존 레논을 구한 것은 누토피아가 아니었다
누토피아의 선언이 이민 사건을 해결했다는 설명은 1975년 10월 7일 미국 제2연방순회항소법원 판결과 맞지 않습니다. 핵심은 영국의 1968년 약물 소지죄가 물질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는 요건 없이도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법원은 이런 외국의 유죄판결을 당시 미국 이민법이 규정한 입국 배제 사유에 그대로 넣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레논이 누토피아의 외교관으로 인정받았다는 판결이 아닙니다. 영국 유죄판결 자체를 취소한 것도 아닙니다. 기존 이민법을 어떤 범위로 해석할 것인지가 체류 문제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누토피아를 선언한 일과 항소에서 이긴 일을 인과관계로 연결하면, 상징적인 행동이 법률상 효력을 얻었다는 오해가 생깁니다.
시간의 순서도 중요합니다. 법원 판단은 1975년이고 영주권 취득은 1976년입니다. 레논은 나라를 발표한 직후 면책을 얻어 남은 것이 아니라, 별도의 법률 절차를 계속 거쳤습니다. 흰 손수건은 문제를 세상에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체류 자격은 변호사와 이민 심사, 법원의 판단을 거쳐 정해졌습니다. 이 차이를 남겨야 누토피아의 정치적 표현과 소송의 성과를 각각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미국 정부는 존 레논을 그렇게 신경 썼을까
레논의 추방 문제를 1968년 대마초 사건 하나만으로 설명하면 당시 분위기의 절반 정도가 빠집니다. 1970년대 초 레논은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과 여러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요코 오노와 함께 평화운동을 벌였고 미국의 반전 활동가들과도 교류했습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틀스 출신 음악가였기 때문에 그가 정치집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특히 1972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레논의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기관이 레논의 활동을 주시한 기록도 훗날 공개됐습니다. Fresh Air의 역사학자 Jon Wiener 인터뷰는 공개된 FBI 자료와 정치적 압박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그의 이민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적 동기가 개입됐다는 논란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레논에게 이미 존재하던 과거 유죄판결이 이민 문제의 법적 근거로 활용됐지만, 그 사건이 당시의 정치적 긴장과 완전히 분리된 문제였다고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닉슨 대통령이 존 레논을 직접 추방했다”고 단정하는 것도 지나칩니다. 실제 추방 절차는 이민당국과 법원의 정식 절차를 통해 진행됐고, 레논 역시 항소와 소송으로 대응했습니다. 정치적 배경과 법률절차가 동시에 존재했던 사건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복잡한 상황 한가운데서 누토피아가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음악가가 심심해서 만든 설정이라기보다 당시 레논이 겪던 정치적·법적 현실에 대한 반응으로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1976년, 그는 진짜 미국 영주권자가 됐다
1975년 항소심 이후 레논의 체류 문제는 다시 심사됐고, 1976년 그는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습니다. 누토피아를 발표한 지 약 3년 만이었습니다. 사진으로도 잘 알려진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영주권을 받은 레논이 기뻐하며 관련 서류를 들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한때 미국에서 나가라는 처분을 받았던 사람이 결국 정식 영주권자가 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누토피아 이야기에 묘한 결말을 붙입니다. 레논은 국경 자체를 없애버린 상상의 나라를 만든 뒤, 현실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미국 체류 자격을 얻었습니다. 여권 없는 나라의 대사라는 주장보다 변호사와 항소법원의 판단이 실제 생활에는 더 결정적이었습니다. 조금 허탈할 정도로 현실적인 결론입니다.
그렇다고 누토피아가 쓸모없는 실패작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처음부터 법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인정받는 데만 있었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겠지만, 누토피아는 이후에도 레논과 오노의 평화 메시지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남았습니다. 레논의 이민 문제는 1970년대에 끝났지만 국경 없는 나라라는 아이디어는 그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선언문·음반·판결문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한다
자료를 대조할 때는 모두를 같은 종류의 증거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선언문은 두 사람이 어떤 나라를 상상했는지 알려주지만,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증명서는 아닙니다. 공식 앨범 안내는 침묵하는 국가가 실제로 음반에 수록됐음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민항소위원회 기록과 법원 판결은 체류 문제의 처분과 판단 근거를 확인하는 자료입니다. 한 자료의 문장을 다른 자료가 증명하는 범위까지 넓혀 읽으면, 예술적 설정이 실제 법적 권리였던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음반의 짧은 침묵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JPGR의 음반 정보는 국가를 3초로 적고, Imagine Peace의 소개는 4초라고 설명합니다. 버전과 측정 방식까지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를 유일한 정답으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서는 공식 앨범 안내로 확인되는 침묵하는 트랙이라는 특징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짧은 상징 하나도 소개 글의 숫자와 실제 음반의 구성을 나누어 확인해야 합니다.
학술적으로도 누토피아는 땅의 크기보다 예술과 유토피아적 사고를 통해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아래에 연결한 Matthew Bannister의 연구는 레논과 오노의 작업, 정치적 이상과 누토피아를 함께 검토합니다. 이 해석은 법적 지위를 판정하는 자료가 아닙니다. 선언의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는 연구와 체류 자격을 결정한 법원 기록을 함께 읽되, 각각 어떤 질문에 답하는지 구분했습니다.
지금 누토피아는 국가보다 온라인 공동체로 이어진다
2026년 10월 확인 기준, 누토피아는 영토를 통치하는 국가보다 존 레논과 요코 오노의 예술적 발상을 이어가는 온라인 공동체로 남아 있습니다. Citizen of Nutopia와 연결된 공식 포럼은 이 프로젝트를 팬들이 무료로 즐기는 개념적 게임이라고 직접 설명합니다. 운영자 소개 글은 2024년 8월 21일에 올라왔고, 같은 해 9월에는 요코 오노의 환영 메시지와 1973년 기자회견 사진 설명이 게시됐습니다.
현재 상태를 볼 때는 사이트의 이름보다 운영자가 붙인 설명이 더 도움이 됩니다. 시민이라는 표현과 ID 형식만 보면 실제 국적을 주는 서비스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 안내는 누토피아를 마음속에 존재하는 예술 작품으로 소개합니다. 온라인에서 참여하는 행위와 국가기관이 법적 신분을 부여하는 행위를 구분해야 합니다. 등록 참여자 수와 현재 활동하는 사람의 수는 같은 지표가 아닙니다. 시점이 명확한 집계 없이 과거 수치를 현재 인구로 소개하기보다는, 운영자가 직접 설명한 프로젝트의 성격과 최근 활동 기록을 기준으로 상태를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공식 포럼에는 2026년 게시물과 활동 기록도 보입니다. 이는 공동체의 온라인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근거이지, 영토나 외교적 지위가 새로 생겼다는 근거는 아닙니다. 1973년에는 기자회견과 앨범을 통해 퍼졌던 생각이 이제 웹사이트와 포럼으로 전달되는 셈입니다. 누토피아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국가 승인 여부와 별개로, 사람들이 그 설정을 어떤 방식으로 공유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건 정말 미크로네이션이라고 불러도 될까?
누토피아를 미크로네이션으로 소개할 때는 한 가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시랜드 공국처럼 특정 구조물이나 땅을 영토라고 주장하고 정부조직을 운영하는 사례와 누토피아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누토피아에는 실제로 통치하려는 영토가 없었고 행정부나 사법부, 군대도 없었습니다. 독립을 선언했지만 현실의 주권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전형적인 독립운동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토피아는 개념국가형, 예술 프로젝트형, 정치 풍자형 미크로네이션이라는 설명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국가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미크로네이션의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 영토국가를 흉내 내는 것보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레논과 오노가 활동하던 1960~70년대 반문화와 개념미술의 분위기를 함께 보면 이 성격이 더 분명해집니다.
국경을 없애고, 여권을 없애고, 국기의 그림을 없애고, 국가에서는 음악까지 없앴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나씩 지울수록 누토피아의 정체성은 더 선명해졌습니다. 보통 미크로네이션은 실제 나라와 비슷해지려고 애쓰는데 누토피아는 반대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갖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지울 수 있느냐로 자기 색깔을 만들었습니다.
나라를 만들었는데 남은 것은 경계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처음 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누토피아가 추방 위기에서 나온 재치 있는 나라 선언이라는 장면이 가장 눈에 들어왔습니다. 검수하면서 먼저 공식 선언문의 날짜와 기자회견 사진 설명을 나누고, 미국 법무부의 이민항소 기록과 1975년 항소판결을 이어 읽었습니다. 그러자 흰 손수건을 든 발표 장면보다 선언과 판결 사이의 간격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선언문이 요구한 것은 면책이었지만, 법원이 판단한 것은 영국의 유죄판결을 미국 이민법에 적용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요코 오노의 영주권 이력도 자료마다 설명하는 시점이 달랐습니다. 한 문장으로 단순화하기보다 과거의 신분 이력과 그 심리에서 내려진 처분을 나누었습니다. 현재 시민 프로젝트 역시 이름만 보고 실제 국가의 연장으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공식 운영자가 팬들을 위한 개념적 게임이라고 설명한 대목을 확인한 뒤, 다시 검증하지 못한 등록 인원은 걷어냈습니다.
이렇게 비교하고 나니 누토피아를 법적으로 실패한 나라라고만 부르는 해석도 좁게 느껴집니다. 레논에게 미국 체류 자격을 준 것은 현실의 절차였습니다. 누토피아는 그 절차를 대신한 해결책이 아니라, 사람을 국경 안팎으로 가르는 제도를 눈앞의 장면으로 바꿔 보여준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성과를 섞지 않고 함께 읽는 것이 이 나라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땅이 없는 나라를 설명하면서도 끝까지 확인해야 했던 것은 실제 국가가 남긴 기록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같은 이름의 Nutopia 제작사도 이 나라와 관련이 있나요?
이 글의 누토피아는 1973년 존 레논과 요코 오노가 선언한 개념국가입니다. 검색 결과에는 2008년 설립된 동명의 TV 제작사도 나옵니다. 자료를 찾을 때는 이름만 보고 연결하지 말고 창립자와 설립 시기, 소개 내용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공식 페이지에 있는 기자회견 사진을 그대로 써도 되나요?
공식 공개와 자유 이용 허락은 다릅니다. 앨범 소개 페이지의 기자회견 사진에는 Bob Gruen의 저작권 표시가 있고, 공식 포럼의 사진에는 Popperfoto/Getty Images가 명시돼 있습니다. 이 글의 그림은 당시 실제 사진으로 제시하지 않고 재구성 이미지로 표시했습니다.
참고 자료
John Lennon 공식 사이트 — 선언문과 요코 오노의 회고
John Lennon 공식 사이트 — Mind Games 음반과 국가
미국 법무부 — Matter of Lennon, 1974년 이민항소 기록(PDF)
미국 제2연방순회항소법원 — Lennon v. INS, 1975년 판결(Justia 수록)
John & Yoko 공식 포럼 — 현재 시민 프로젝트의 성격
Matthew Bannister — John Lennon, Yoko Ono and Nutopia 연구(PD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