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약 두 번에도 버틴 플랫폼, 로즈섬 공화국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재현 이미지입니다. 당시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로즈섬 공화국은 바다 위 400㎡ 플랫폼에서 독립을 선언했지만,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당국의 통제 아래 들어갔습니다. 이듬해에는 폭약을 사용한 철거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두 번의 폭파와 최종 침몰을 같은 사건으로 보아도 될까요? 플랫폼이 버틴 과정과 자료마다 다른 결말을 함께 살펴봅니다.
두 번의 폭파에도 남은 것은 ‘나라’가 아니라 지지 구조였다
‘폭약 두 번에도 버텼다’는 말은 로즈섬이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세 철거 연표에 따르면 두 차례 폭파로 플랫폼의 지지 구조가 크게 손상됐지만, 남은 구조물이 즉시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침몰은 그 뒤의 폭풍과 연결해 설명됩니다. 이 사건의 반전은 폭약의 실패보다, 폭파와 침몰이 서로 다른 단계였다는 데 있습니다.
자료를 나란히 놓으면 이 차이가 보입니다. 리미니시의 2021년 공식 관광 안내는 1969년 2월 11~13일 거의 2톤의 폭약으로 플랫폼을 완전히 철거했다고 요약합니다. 이탈리아어 위키백과를 출처로 삼은 Weird Italy의 상세 연표는 두 번의 폭파 뒤에도 지지 구조가 남았고, 2월 26일 폭풍에 가라앉았다고 적습니다. 후자는 별도의 독립된 현장 증언이 아니라 같은 연표를 재구성한 설명입니다. 공식 안내의 압축된 결말과 후대 자료의 세부 과정을 구별해 읽어야 합니다.
Weird Italy에 제시된 폭약량은 첫 번째 약 675kg, 두 번째 약 1,080kg으로 합계 약 1.75톤입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당시 작업 보고서 원문까지 직접 대조하지 못했으므로, 이 수치는 해당 재구성 자료의 기록으로 제시합니다. ‘폭탄이 아무 효과도 없었고 폭풍만 섬을 없앴다’는 식의 이야기는 손상 과정을 지워버립니다. 제목의 ‘버텼다’는 표현도 두 차례 폭파 직후 남은 구조물에 한정해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로즈섬은 국가를 이긴 불굴의 섬이라는 전설보다 더 구체적인 사례가 됩니다. 개인이 실제로 세운 400㎡ 해상 시설에 이탈리아 당국이 들어왔고, 통제에서 끝나지 않고 구조물 철거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보는 지점은 공화국을 선언한 말보다, 그 선언을 떠받치던 물리적 장소까지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결말을 이해하려면 로사가 왜 이 바다에 플랫폼을 세웠고, 그 시설을 왜 나라로 부르게 됐는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나라를 만들려고 시작한 공사는 아니었다
로즈섬 이야기는 영화 때문에 조금 낭만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유를 사랑하던 괴짜 청년이 정부 간섭에 질려 어느 날 자기 나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식이죠. 실제 기록을 따라가면 분위기가 꽤 다릅니다. 조르조 로사(Giorgio Rosa)는 즉흥적으로 바다에 뛰어든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볼로냐에서 활동하던 엔지니어였습니다.
리미니시 자료를 보면 로사가 1958년 7월, 리미니 해안에서 약 6해리 떨어진 지점을 선택했다고 나옵니다. 당시 이탈리아 영해 경계보다 불과 약 500m 바깥이었습니다. 육지에서 보면 코앞이라고 하기엔 멀고, 국가의 경계라는 관점에서는 묘하게 아슬아슬한 자리였습니다. 이 위치가 나중에 모든 소동의 핵심이 됩니다.
당시 신문을 다시 뒤진 이탈리아 언론의 기록에 따르면, 처음 목적은 정치 혁명보다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로사는 새로운 해상 건축기술을 시험하고 관광과 상업에 활용하려 했고, 성공하면 비슷한 플랫폼을 다른 곳에도 세울 생각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호텔이나 식당, 상점 같은 시설도 함께 거론됐습니다. 처음부터 10년 동안 비밀리에 독립국을 준비했다고 보기엔, 실제 기록이 훨씬 소박합니다.
돈도 문제였습니다. 로사는 자기 아이디어만으로 공사를 밀어붙일 형편이 아니어서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야 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구조물을 세우는 일이 싸게 끝날 리 없었으니까요. 초기 시도는 악천후 때문에 실패했고, 공사는 몇 년씩 늘어졌습니다.
400㎡ 철제 플랫폼을 바다 한복판에 세운 방법
완성된 로즈섬은 대략 20m × 20m, 약 400㎡였습니다. 아파트 한 채보다는 크지만 국가라고 부르기엔 어이없을 만큼 작은 면적입니다. 구조물 아래에는 9개의 굵은 지지대가 박혀 있었습니다. 철제 관을 해저에 설치한 뒤 콘크리트로 고정하는 방식이었고, 바닥 아래 수심은 약 13m 정도였습니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육지에서 자재를 준비해 바다로 옮긴 뒤, 파도와 조류를 견디며 해저에 고정해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해양건설 장비를 쉽게 빌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죠. 개인 엔지니어가 1960년대에 이 정도 규모의 해상 구조물을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로즈섬 이야기에서 가장 저평가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1967년 무렵부터는 사람들이 실제로 플랫폼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리미니는 이미 여름 관광지로 자리 잡던 시기였죠. 해변 저 멀리 바다 위에 정체불명의 건물이 하나 서 있는데, 궁금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관광객을 실은 배가 오갔고, 플랫폼에서 바가 운영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영해에서 500m 벗어나자 갑자기 국가가 등장했다
로사가 이 자리를 고른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이탈리아 영해 밖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건축에서 법률로 넘어갑니다. 로사는 훗날 인터뷰에서, 영해 밖에 만든 구조물이라도 어떤 법적 형태는 필요했고 그래서 법률가들의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1968년 5월 1일, 플랫폼은 독립된 정치체를 표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쓰인 이름이 로즈섬 공화국입니다. 로사가 대통령을 맡고 재무·내무·산업 및 상업·통신·외무에 해당하는 부서까지 구성했습니다. 국기 하나 걸어놓고 끝낸 수준이 아니라, 국가처럼 보이기 위한 장치를 꽤 진지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공식 언어로 고른 것은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에스페란토였습니다. 특정 나라에 속하지 않는 국제 공용어를 표방한 언어를 골랐다는 점이 로즈섬의 성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나라 이름 자체도 에스페란토로 지었습니다.
자체 우표도 발행했습니다. 화폐 단위로는 밀(Mill 또는 Mills)을 내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화폐 단위를 만든 것과 실제 지폐·동전이 일상적으로 유통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금 확인되는 자료만으로 로즈섬 화폐가 진짜 현금처럼 널리 쓰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국기, 대통령, 정부, 언어, 우표, 화폐 단위까지. 겉모양만 보면 제법 그럴듯합니다. 그래도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카지노와 해적방송국 소문은 어디까지 진짜였을까?
로즈섬이 유명해지자 사람들의 상상력도 함께 폭발했습니다. 카지노가 들어설 거라는 이야기, 세금을 피하는 자유항이 될 거라는 주장, 해적 라디오 방송국이 생긴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습니다. 냉전기였던 탓에 정치적으로 훨씬 과격한 상상도 등장했죠. 조그만 철제 플랫폼 하나에 사람들이 보고 싶은 걸 죄다 얹어놓은 셈입니다.
여기서 실제 계획과 소문을 뒤섞으면 로즈섬 역사는 순식간에 영화가 돼버립니다. 당시 기록으로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되는 건 관광·상업 활용 의도와 바 운영, 숙박시설·식당·기념품점을 늘리려던 구상 정도입니다. 카지노나 해적방송 이야기는 당시에도 널리 퍼졌지만, 실제로 운영됐다고 볼 근거는 부족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자료를 여러 번 대조하게 됐습니다. 인터넷 글 중에는 로즈섬에 호텔, 은행, 나이트클럽, 카지노, 우체국, 라디오 방송국이 전부 완성돼 성업했던 것처럼 적은 경우가 꽤 있더군요. 당시 계획과 나중에 붙은 전설이 한데 섞인 결과에 가깝습니다. 400㎡짜리 플랫폼이라는 실제 크기를 떠올려보면 왜 구별해서 봐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두려워한 것은 400㎡의 땅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정부가 왜 이런 작은 구조물을 그냥 두지 않았는지, 이게 로즈섬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로즈섬 자체가 이탈리아를 위협할 군사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수천 명이 독립운동을 벌이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플랫폼 하나였습니다.
진짜 골치 아픈 건 선례였습니다. 당시 보도를 보면, 비슷한 구조물을 적은 비용으로 영해 밖에 계속 지어 각종 규제를 피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정부 내부에서도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이 영해 바로 바깥에 플랫폼을 짓고 자기 법을 적용하겠다고 나선다면, 두 번째·세 번째 사람이 똑같이 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으니까요.
관광 수익과 세금 문제도 걸려 있었습니다. 로사가 훗날 밝힌 계획에는 육지보다 세금과 행정 부담이 적은 해상 관광시설이라는 경제적 계산도 들어 있었습니다. '자유를 위한 공화국'이라는 이미지만으로 이 사건을 설명하면 이 대목이 빠집니다. 자유와 사업, 기술 실험, 법의 빈틈을 향한 호기심이 한데 뒤엉켜 있었던 셈입니다.
다만 정부의 속마음을 한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세금과 통제, 유사 시설의 확산 가능성이 함께 거론된 사건으로 읽는 편이 낫습니다.
독립 선언 두 달도 안 돼, 배들이 플랫폼을 포위했다
점거 날짜는 자료를 구별해 읽어야 합니다. 볼로냐 시립 살라보르사 도서관의 연표는 독립 선언을 1968년 5월 1일, 경찰 점거를 6월 26일로 적습니다. 반면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의 상세 연표와 이를 출처로 삼은 Weird Italy는 6월 25일을 제시합니다. 5월 1일에서 6월 25일까지의 날짜 차이는 55일, 26일까지는 56일입니다. 널리 쓰이는 ‘55일의 나라’는 첫 번째 날짜 계산에 해당하며, 플랫폼 자체가 사라진 날까지의 수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두 자료가 일치하지 않는 하루를 여기서 억지로 하나로 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문자 그대로 이탈리아와 로즈섬 사이의 '전쟁'이라고 부르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대 다큐멘터리나 대중매체는 극적인 의미로 그런 표현을 즐겨 쓰지만, 실제로는 이탈리아 당국의 점거와 철거조치, 그리고 로사 측의 법적 대응 정도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로사는 구조물이 당시 이탈리아 영해 밖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철거에 맞섰습니다.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의 상세 연표에는 철거를 막으려는 법적 절차도 나오지만, 이번 확인에서는 해당 재판 기록 원문을 직접 읽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법적 대응이 플랫폼을 보전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이듬해 폭약을 사용한 철거가 진행됐다는 큰 흐름은 공공 도서관 연표에서도 확인됩니다.
영해 밖이면 정말 자기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까?
여기서 가장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로즈섬이 당시 이탈리아 영해 바깥에 있었다는 것과, 그곳이 아무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땅이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게다가 인공 구조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자동으로 주권국가를 세울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유엔해양법협약의 기준은 훨씬 명확합니다. 협약 제60조는 배타적경제수역에 설치되는 인공섬과 구조물에 대해 연안국의 권한을 규정하고 있고, 인공섬은 법적인 의미의 자연 섬 지위를 갖지 못하며 자체 영해도 가질 수 없다고 정합니다. 대륙붕의 인공시설에도 비슷한 규정이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이 조약을 그대로 1968년 로즈섬 사건에 갖다 붙이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로즈섬 사건보다 훨씬 뒤인 1982년에 채택됐습니다. 지금 기준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이 조항 때문에 로즈섬은 불법이었다"는 식으로 과거에 소급 적용하면 시간 순서가 뒤집힙니다.
로즈섬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해양 구조물과 연안국 권한을 둘러싼 국제법 체계가 훨씬 덜 정비된 시기였고, 로사는 그 경계의 틈을 파고들려 했습니다. 그 법적 틈이 곧 새로운 주권국가를 만들 권리를 뜻하지는 않았습니다. 로즈섬을 공식적으로 주권국가로 승인한 나라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영화와 실제 로즈섬은 얼마나 다를까?
2020년 넷플릭스 영화가 공개되면서 로즈섬은 반세기 만에 다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영화 덕분에 조르조 로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사람도 많습니다. 영화를 역사자료처럼 받아들이면 상당히 헷갈립니다.
실제 로사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철없는 신참 엔지니어보다 훨씬 나이가 있었고 직업 경험도 쌓인 사람이었습니다. 섬 건설 역시 친구 몇 명이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낸 프로젝트가 아니라, 1950년대 후반부터 구상돼 여러 해 동안 실패와 재시도를 거친 결과였습니다. 독립국가라는 아이디어가 플랫폼 계획 첫날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영화에는 관객이 좋아할 만한 인물과 갈등, 국제정치 장면이 보강돼 있습니다. 영화는 영화대로 재미있습니다. 저는 실제 기록 쪽이 묘하게 더 기묘합니다. 자유를 찾아 떠난 청춘의 낭만담보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던 엔지니어가 기술 실험과 사업을 벌이다 법적 경계까지 건드렸고 끝내 정부가 실제로 출동했다는 쪽이 오히려 더 재미있습니다.
나라는 없어졌지만 잔해는 아직 리미니 앞바다에 있다
지금 로즈섬 공화국 정부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시민권을 발급하거나 독립운동을 계속하는 현존 미크로네이션으로 보기는 어렵고, 조르조 로사 역시 201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사 속 미크로네이션에 가깝습니다.
대신 흔적은 남았습니다. 리미니시는 로즈섬이 있던 지점과 수중 잔해를 지역의 독특한 해양 역사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닷속 구조물은 해양생물이 자리 잡은 잠수 지점이 됐고, 감발룽가 도서관에는 당시 사진과 관련 기록이 보존돼 있습니다. 사라진 미크로네이션이 관광과 지역 기억의 소재로 다시 살아난 셈입니다.
폭파 장면보다 오래 남은 것은 장소를 잃은 선언이었다
처음에는 저도 두 번이나 폭파했는데 폭풍이 마지막을 끝냈다는 장면에 끌렸습니다. 자료를 대조하고 나니 ‘폭약에도 버틴 나라’라는 말에서 나라와 구조물을 섞어 읽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국의 점거로 자유로운 운영이 막힌 시점, 폭파로 시설이 손상된 시점, 남은 구조물이 가라앉은 시점은 같지 않았습니다. 리미니시의 짧은 안내와 상세 연표가 서로 다른 결말처럼 보인 것도, 이 과정을 얼마나 압축해서 설명했느냐와 관련 있다고 읽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로즈섬의 씁쓸함은 독립국을 선언해도 그 선언을 유지할 장소를 지킬 힘은 따로 필요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 바를 담은 사진과 해상 플랫폼의 기록이 남아 있어 단순한 설정놀이로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오늘날 리미니시는 그 잔해를 수중 역사로 소개합니다. 개인이 자기 규칙을 적용하려던 장소가 사라진 뒤에는, 그 장소를 둘러싼 이야기가 도시의 기억과 관광 소재로 남았습니다. 제게 오래 남는 것은 폭약의 양보다 이 변화입니다. 로사는 플랫폼 위에서 공화국을 말했지만, 지금 우리는 바닷속에 남은 그 플랫폼을 통해 공화국을 읽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로즈섬 공화국에 실제 주민이 살았나요?
도시형 주민 공동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후대 연표에는 상주자나 관리인 이야기가 나오지만, 방문객 수와 주민 수는 구별해야 합니다. 이번에 확인한 자료만으로 특정 시점의 정확한 거주 인원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로즈섬의 우표와 화폐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나요?
현재 통용되는 우편·결제 수단은 아닙니다. 우표는 역사 수집품으로 남아 있지만, 화폐 단위 밀(Mill)이 일반적인 지폐나 동전으로 널리 유통됐다는 근거도 부족합니다.
Q. 로즈섬이 있던 곳을 지금 방문할 수 있나요?
수면 위의 섬은 사라졌지만 잔해는 리미니 앞바다 아래에 남아 있습니다. 리미니시는 전문 업체를 통한 스쿠버다이빙 지점으로 소개하고 있으므로, 개인이 임의로 접근하기보다 현지 운영 여부와 자격·안전 조건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참고 자료
- 리미니시 — Isola delle rose, un viaggio nella Rimini sott’acqua (2021년 공식 보도자료)
- 볼로냐 살라보르사 도서관 — L’Isola delle Rose (선언·점거 연표)
- 이탈리아어 위키백과 — Isola delle Rose (상세 연표; 원출처 확인 필요)
- Weird Italy — The Curious History of the Republic of Rose Island (폭약 수치·침몰 연표, 위키백과 기반 재구성)
- 호주 연방 법령 등록부 — 별표 1에 수록된 유엔해양법협약 제60조·제80조 (협약 원문 확인용; 1968년 사건의 직접 근거가 아님)
- Emilia Romagna Turismo — Rimini sott’acqua (공식 지역 관광 자료, 수중 잔해 소개)
자료 재확인: 2026년 10월 1일. 관광 안내에 실린 잔해 소개와 현재 예약 가능한 프로그램은 구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