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철수 뒤에도 나라가 되지 못한 트리니다드 공국
하든-히키의 항해를 상상해 재구성한 대표 삽화입니다. 그의 실제 상륙을 증명하는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트리니다드 공국을 자처한 제임스 하든-히키는 1895년 영국의 트린다지섬 점령에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이듬해 물러난 뒤에도 섬은 그의 공국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영국의 철수가 개인 왕국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이 글은 하든-히키의 선점 주장과 브라질의 기존 영유권, 실제 외교 협상을 연결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영국은 철수했는데, 왜 트리니다드 공국의 섬이 되지 않았나?
1895년 영국은 해저 전신케이블 거점 확보를 위해 남대서양의 트린다지섬을 점령했습니다. 이미 그곳을 트리니다드 공국(Principality of Trinidad)의 영토라고 공표한 하든-히키 측도 항의했지만, 섬을 둘러싼 국가 간 분쟁은 영국과 브라질 사이에서 진행됐습니다. 포르투갈의 외교적 관여를 거쳐 1896년 영국이 물러난 뒤 섬의 권리를 인정받은 쪽도 브라질이었습니다.
하든-히키의 주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을 자신이 먼저 차지했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에서 이어받았다고 보는 권리와 기존 국가행위를 근거로 항의했습니다. 공국 측의 독립 선언과 군주 칭호가 그 권리를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영국의 점령을 거부한 결과와 하든-히키의 공국을 승인하는 결과는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차이를 따라가면 “괴짜가 섬에서 왕이 됐다”는 이야기에서 빠지기 쉬운 결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국기를 만들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누가 기존 권리를 주장했고 누구와 영토 협상이 이루어졌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아래에서는 상륙 이야기의 불확실성, 공국이 만든 상징물, 외교적 해결을 나누어 살펴봅니다.
카리브해가 아니라 브라질 앞바다의 트린다지였다
이야기를 더 따라가기 전에 이름부터 확실히 구분해야 합니다. 트리니다드 공국이라는 이름만 보면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전혀 다른 곳입니다. 하든-히키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했던 곳은 브라질 본토에서 동쪽으로 약 1,100km 떨어진 남대서양의 트린다지섬(Ilha da Trindade)이었습니다. 포르투갈어 지명은 Trindade지만 하든-히키가 만든 공국은 영어식으로 Trinidad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비슷한 철자 때문에 지금도 두 장소가 종종 뒤섞여 소개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무인도와 무주지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라도 이미 어떤 국가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국가행위를 해왔다면 마음대로 점유해서 새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빈 땅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트린다지의 경우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이어받은 권리를 근거로 이 섬이 자국 영토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19세기에 브라질 함정들이 섬을 찾은 기록도 있었고, 하든-히키의 건국 선언 이전에 정부 차원의 자원 개발 허가가 나온 기록도 확인됩니다.
이 차이가 뒤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핵심입니다. 하든-히키에게는 외딴 무인도가 새로운 국가를 만들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브라질의 시각에서는 이미 자기 나라에 속한 외딴 섬에 외국인 한 명이 나타나 소유권과 독립을 주장하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섬을 두고 출발점부터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트리니다드 공국을 이해하려면 ‘얼마나 기상천외한 나라였나’보다 먼저 하든-히키가 무엇을 자기 마음대로 전제했는가를 봐야 합니다.
1888년, 그는 정말 섬에 발을 디뎠을까
트리니다드 공국의 시작을 찾아가면 가장 먼저 걸리는 것이 1888년입니다. 하든-히키가 인도로 향하던 항해 중 트린다지를 보고 이 섬을 자기 이름으로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여러 후대 기록에 등장합니다. 그가 탄 배의 이름으로 Astoria가 언급되기도 합니다. 이 설명만 읽으면 장면이 아주 선명합니다. 모험가가 배에서 내려 텅 빈 섬을 둘러보고는 ‘좋아, 여기서 내가 나라를 세우자’고 마음먹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자료를 조금 더 따라가면 일이 깔끔하지 않습니다. 브라질 쪽 역사 연구 가운데에는 하든-히키가 트린다지에 실제로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고 설명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반대로 그가 항해 도중 섬을 방문하고 점유를 선언했다고 서술하는 자료도 남아 있습니다.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의 1906년 전기는 상륙했다고 서술하지만, 2012년 역사 연구 「Barth e a ilha da Trindade, 1957–1959」는 섬에 간 적이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번에 확인한 자료만으로는 어느 쪽이 맞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888년은 ‘하든-히키가 확실히 섬에 상륙해 국가를 세운 해’라기보다, 훗날 그가 자신의 선점 권리를 주장할 때 근거로 내세운 시점으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해에 완성된 정부가 생겼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든-히키가 나중에 “나는 영국보다 먼저 이 섬에 권리를 갖고 있었다”는 논리를 펼칠 때 필요한 과거가 바로 1888년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미크로네이션 역사는 당사자가 자신의 건국 신화를 직접 만들어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몇 년 뒤 작성된 선언문이나 회고가 반복 인용되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부터 확정된 사실처럼 굳어지기도 합니다. 트리니다드 공국도 비슷합니다. 1888년의 일을 정확히 어디까지 사실로 볼 수 있는지는 조심해야 하지만, 적어도 1890년대에 들어 하든-히키가 이 섬을 자기 영토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훨씬 분명하게 기록에 나타납니다. 다음 단계부터 그의 계획은 갑자기 말뿐인 상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나라를 선언하더니 우표와 훈장과 채권까지 만들었다
하든-히키가 트리니다드 공국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시점은 1893년입니다. 그해 9월 그는 여러 나라의 외무당국에 서신을 보내 자신이 트린다지를 차지했고 그곳에 독립국가를 세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후에는 스스로 제임스 1세(James I)라는 군주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1888년의 선점 주장이 다소 흐릿한 기록 속에 남아 있다면, 1893년 이후부터는 적어도 하든-히키가 자신을 실제 군주처럼 대외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훨씬 분명해집니다.
그가 준비한 것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국기와 문장을 만들고, 자체 우표를 발행했으며, 트리니다드 십자훈장(Cross of Trinidad)이라는 기사단 훈장도 마련했습니다. 가까운 인물이었던 드 라 부아시에르에게는 재상과 외교 책임자 역할을 맡겼고, 뉴욕에는 공국 사무국까지 두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꽤 진지한데, 채권까지 발행했습니다. 단순히 술자리에서 “오늘부터 내가 왕이다”라고 선언한 수준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하든-히키의 구상 속에는 실제 정착 계획도 있었습니다. 노동자를 모집하고 항구와 기반시설을 만들며 사람을 이주시켜, 트린다지를 남대서양의 작은 독립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그림이었습니다. 후대 기록에는 그가 장차 이 공국을 ‘아메리카의 벨기에’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을 이야기했다는 내용도 등장합니다. 외딴 바위섬 하나를 보고 이런 국가 프로젝트까지 설계했다는 점은 꽤 대담합니다. 대체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국기, 우표, 훈장, 정부 직책이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트리니다드 공국이 국제법상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체 우표는 국가의 공식 우편체계와 별개의 문제였고, 군주 칭호 역시 다른 나라들이 그 지위를 승인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든-히키 측 기록에는 여러 나라가 자신의 지위를 인정했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오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독립적인 외교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국가의 외형은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었지만, 그 외형을 국제적 지위로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하든-히키가 놓친 한 단어, ‘무주지’
트리니다드 공국의 이야기가 단순한 괴짜 군주 일화에서 역사 문제로 넘어가는 지점은 바로 섬의 법적 지위입니다. 하든-히키의 구상은 사실상 한 가지 전제 위에 서 있었습니다. 트린다지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정부 시설도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아무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땅처럼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쉽게 풀면 ‘주인 없는 땅을 먼저 차지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브라질이 바라본 역사는 전혀 달랐습니다. 브라질은 1822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면서 포르투갈이 가지고 있던 트린다지에 대한 권리도 이어받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후 19세기에도 브라질 함정들이 섬을 찾았고, 하든-히키의 공국 선언보다 앞선 시기에 정부가 섬의 광물과 천연자원 개발을 허가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즉 브라질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새로 발견한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무인도와 무주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섬에 상주 주민이 없다는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국가의 영유권까지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어느 국가가 오랫동안 영유 의사를 표시했고, 행정행위나 군함 방문처럼 주권과 연결되는 행동을 해왔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집니다. 트린다지는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 대목은 하든-히키에게 상당히 치명적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섬을 차지했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애초에 그가 차지할 수 있는 빈 땅이었다는 전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브라질은 그보다 앞선 영유권 주장과 국가행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든-히키가 아무리 군주 칭호를 만들고 외교문서를 보내도, 출발점부터 “그 섬은 정말 아무의 땅도 아니었는가?”라는 질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국기 두 장이 올라갔지만 진짜 분쟁 당사자는 따로 있었다
이제 다시 1895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국은 남대서양 해저 전신망을 위해 트린다지를 거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검토했고, 군함을 보내 섬을 점유했습니다. 하든-히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자신은 몇 년 전부터 이곳이 독립국가라고 알리고 왕까지 자처했는데, 어느 날 세계적인 강대국의 군함이 나타나 자기 땅이라고 선언한 셈이었으니까요.
그의 공국은 항의에 나섰습니다. 드 라 부아시에르는 미국 국무부에 서신을 보내 영국의 행동이 트리니다드 공국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국가들이 공국의 중립과 독립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도 펼쳤습니다. 하든-히키 세계관 안에서는 논리가 이어집니다. 독립국가가 외국의 침입을 받았으니 다른 나라들이 국제문제로 다뤄줘야 한다는 이야기였죠.
현실의 외교는 냉정했습니다. 미국이 트리니다드 공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해 영국과 맞서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영국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자국의 영토권을 주장한 것은 브라질 정부였습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에서 이어받았다고 보는 역사적 권리와 이전의 국가행위를 내세우며 영국의 점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트리니다드 공국의 위치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든-히키는 스스로 왕이었고, 정부 직책도 있었고, 국기도 있었고, 영토라고 부르는 섬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에서 실제 국가끼리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자 공국은 주권 협상의 당사자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영국과 브라질이 서로 외교문서를 주고받는 동안 하든-히키의 주장은 바깥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트리니다드 공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표가 진짜였는지, 훈장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이 나라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자신을 국가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주권국가들이 실제 영토와 외교 문제를 놓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누가 협상 상대인지가 드러납니다. 트리니다드 공국은 바로 그 순간 국제정치의 바깥쪽에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이 끼어들자 영국은 철수했다
영국과 브라질의 다툼은 곧 포르투갈까지 끌어들였습니다. 브라질은 과거 포르투갈령에서 독립한 국가였고, 트린다지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따지는 과정에서 포르투갈의 입장이 중요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국제재판에서 브라질이 승소했다고 이해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포르투갈의 관여는 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외교적 해결 과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주선(bons ofícios)’이라는 표현이 쓰였지만, FUNAG의 연구는 실제 관여가 해결안을 제시하는 중재에 가까웠다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주선이라는 명칭만으로 관여 범위를 단순화해서도 안 됩니다.
포르투갈 측은 자신이 과거 가지고 있던 트린다지 관련 권리가 브라질 독립 과정에서 브라질로 승계됐다는 취지의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영국도 이 문제를 계속 끌고 가기보다는 점유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1896년 영국은 섬에서 철수했습니다. 이듬해 브라질은 섬에 다시 주권을 표시하는 표지를 설치했습니다.
그렇다고 섬이 하든-히키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이 묘합니다. 영국은 물러났고, 하든-히키는 애초부터 자신이 더 먼저 권리를 주장했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그에게 기회가 돌아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영국이 물러난 뒤 트린다지의 주권을 실제로 행사한 쪽은 브라질이었고, 트리니다드 공국이 섬을 통치하거나 정착민을 보내 행정부를 운영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공국의 영토 프로젝트는 이 외교분쟁을 거치며 사실상 현실성을 잃었습니다.
상륙 이야기와 영유권 기록을 어떻게 구분했나?
| 자료 | 확인 범위와 한계 |
|---|---|
| Davis, Real Soldiers of Fortune (1906) | 공국의 상징물과 뉴욕 사무국, 공국 측 항의문을 소개합니다. 인물에 호의적인 전기로, 주장한 정착 계획이나 승인 여부까지 독립적으로 입증한 외교 기록은 아닙니다. |
| 「Barth e a ilha da Trindade, 1957–1959」(2012) | 하든-히키가 섬에 간 적이 없다고 서술합니다. 상륙했다고 적은 전기와 충돌하므로 실제 상륙 장면을 확정된 사실처럼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
| 미국 국무부 FRUS, 1895년 Thompson 보고와 첨부 서신 | 브라질과 영국이 점령 및 기존 권리를 놓고 교환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쟁 중 각국의 주장으로 읽어야 하며 모든 주장이 곧 법원의 판단인 것은 아닙니다. |
| FUNAG, Martin Normann Kämpf의 2016년 연구 | 1895–1896년 분쟁과 외교적 해결을 분석합니다. 공국의 선전 자료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국가 간 협상의 맥락을 제공합니다. |
이 비교에서 공국의 주장을 전하는 기록과 국가 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을 구분했습니다. 특히 Davis는 정착과 시설 건설이 진행됐다고도 서술하지만, 그것만으로 지속적인 정착 공동체와 공국의 실효적 통치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1888년 상륙 여부와 정착 계획의 실현 정도는 이번 확인에서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2026년 현재, 브라질이 관리하는 연구·보전 공간
확인 기준: 2026년 10월 5일. 현재 상태는 브라질 해군의 PROTRINDADE 안내와 ICMBio의 보호구역 정보를 확인해 정리했습니다. 해군 안내는 2023년에 게시되고 2026년 6월에 갱신된 페이지로, 게시일과 실제 활동 시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든-히키가 꿈꾼 트리니다드 공국의 정부나 왕실은 오늘날 트린다지섬에서 활동하지 않습니다. 섬을 실제로 관리하는 곳은 브라질입니다. 브라질 해군은 1957년 트린다지섬 해양관측소(POIT)를 설치했고, 이후 인력을 배치하며 해양·기상 관측과 연구 지원을 이어왔습니다. 19세기에 하든-히키가 상상했던 개인 왕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국가 관리가 자리 잡은 셈입니다.
섬의 현재 가치를 설명할 때도 미크로네이션 이야기만 붙잡고 있으면 오히려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트린다지와 마르팀 바스 일대는 독특한 해양 생태계와 고유종이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브라질은 2018년 이 일대에 해양보호구역과 자연기념물을 지정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사라진 공국의 궁전이나 왕실 유적이 아니라, 브라질의 해양 연구와 영토 관리, 그리고 섬 주변 생태계 보전입니다.
방문 방법도 일반 관광지와 다릅니다. 연구 프로그램인 PROTRINDADE 등을 통해 과학자와 관계 인력이 섬에 접근하지만, 일반 여행객이 휴양지처럼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최근 브라질 기관의 안내에서도 연구기관이나 정부기관과 연계되지 않은 일반 방문자의 접근이 제한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니 인터넷에서 트리니다드 공국 이야기를 읽고 “옛 왕국 흔적을 보러 한번 가볼까?”라고 생각했다면 계획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여기는 미크로네이션 테마 관광지가 아닙니다.
묘하게도 이 현재 모습이 하든-히키의 실패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사람이 거의 없는 섬을 보며 새 나라를 만들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100년 넘게 지난 지금 그 섬에는 브라질 해군과 연구 프로그램, 환경보호 제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트린다지는 비어 있었던 섬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어 국가의 존재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섬에 더 가까웠습니다.
왕의 이야기를 읽은 뒤, 영국의 철수가 무엇을 뜻했는지 다시 보다
이번 검토에서는 하든-히키의 전기를 먼저 읽고, 그 안에 소개된 공국 측 항의와 미국 국무부에 남은 영국·브라질의 서신을 대조했습니다. 전기는 왕과 공국의 시각을 생생하게 전하지만, 외교 서신에서는 브라질의 기존 권리 주장과 영국의 점령 이유가 중심에 놓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디에서 서술하느냐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집니다.
저는 이 차이가 트리니다드 공국의 결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국이 떠났다는 사실만 떼어놓으면 공국의 항의가 성공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섬의 권리를 브라질에 인정한 해결과 공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한 해결은 다릅니다. 하든-히키에게 불리한 점령이 끝났다고 해서 그의 건국 주장이 유효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륙 여부를 확정하지 못한 한계도 남겼습니다. 다만 그가 실제로 발을 디뎠는지를 결정하지 않더라도, 공국이 국가 간 영토 협상의 당사자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결말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기억할 것은 왕의 기이함만이 아닙니다. 독립 선언의 결과를 읽을 때는 누가 물러났는지와 함께 누구의 권리가 인정되고 누가 실제로 관리하게 됐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트리니다드 공국의 우표는 실제 국제우편에 사용할 수 있었나요?
공국이 자체 우표를 만든 것은 확인되지만, 그것이 일반 국가의 우표처럼 국제우편 체계에서 통용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든-히키 측은 국제우편 체계와 연결되기를 원했지만 정식 국가 우편기관의 우표와 같은 지위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미크로네이션 역사와 우취 분야의 수집 대상으로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Q. 트리니다드 공국 시민들이 실제로 섬에 정착했나요?
하든-히키는 노동자와 정착민을 모집해 항구와 기반시설을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대로 지속적인 정착 공동체와 정부가 트린다지섬에 만들어졌다는 신뢰할 만한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계획과 실제 통치는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공국의 행정 활동 상당 부분은 섬보다 뉴욕 등 외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Q. 지금 트린다지섬에 일반 관광객이 갈 수 있나요?
일반 관광객이 자유롭게 방문하는 관광지는 아닙니다. 현재 주요 접근은 브라질의 연구·정부 프로그램과 연결된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섬은 군사적 관리와 환경보호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방문을 계획할 만한 일반 관광상품이 상시 운영되는 섬으로 소개해서는 안 됩니다.
Q. 트리니다드 공국은 지금도 존재하나요?
하든-히키가 세웠던 역사적 트리니다드 공국이 오늘날 트린다지섬을 통치하거나 독립정부를 운영하고 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현재 섬은 브라질 영토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다루는 트리니다드 공국은 현재 활동 중인 영토형 미크로네이션이라기보다 19세기 말의 역사적 미크로네이션 사례로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참고 자료
- Fundação Alexandre de Gusmão - Ilha da Trindade: a ocupação britânica e o reconhecimento da soberania brasileira
- FUNAG - Repertório da Prática Brasileira do Direito Internacional Público 1889-1898
- Brasiliana Fotográfica / Biblioteca Nacional - Ilha da Trindade: síntese histórica
- Richard Harding Davis - Real Soldiers of Fortune: Baron James Harden-Hickey
- Marinha do Brasil - Programa de Pesquisas Científicas na Ilha da Trindade
- ICMBio - Área de Proteção Ambiental do Arquipélago de Trindade e Martim Vaz
- U.S. Department of State, Office of the Historian — FRUS 1895, Part I, Mr. Thompson to Mr. Olney (7 August 1895), 첨부 영국·브라질 서신
- 「Barth e a ilha da Trindade, 1957–1959」 — História, Ciências, Saúde–Manguinhos (2012)